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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양력 3월1일은
한국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독립선언일' 이라 칭하였던
'삼일절'입니다.
<목차>
-3.1절 유래
-우리나라 국경일
-유관순 열사
-태극기 게양 방법
3.1절 유래
1919년 3월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서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에 알렸으며
대한민국 독립과 국민의 자주성을 보여주기위해 조선인들이 일으킨 대규모 항쟁이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하여 총 3천여명 가량이 참여하였습니다.
이 만세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민주주의 비폭력적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종교 지도자들 중심으로 33인의 대표자가 구성되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고
낭독한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종로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들이 모여 다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만세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전국에있는 애국자들의 마음을 자극하여 다른형태의 만세독립운동으로 확산되었으며
광복으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법률'을 공포 하였고 정식 국경일로 정하였고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으로 매년 양력 3월1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경일
삼일절 | 3월1일 |
제헌절 | 7월17일 |
광복절 | 8월15일 |
개천절 | 10월3일 |
한글날 | 10월9일 |
3.1 독립만세운동가 유관순
만세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습니다.
대한독립단원의 어머니로 추앙받은 인물입니다.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으며 공주영명여학교에 입학하였고
1918년에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3.1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참가하여 "대한민국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일본총독부의 학교휴교령으로 고향천안으로 내려가만세운동 시위에 참가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생애 1902.12.16~1920.09.28
1919. 3.1 | 서울기미독립만세운동 참가 |
1919. 3.5 | 남대문역 학생단 가두시위 운동참가 |
1919. 4.1 | 아우내독립만세운동 시위중 출동한 일본헌병대 체포되어 공주검사국 으로이동 |
1919. 5.9 | 주지방법원에서 실형선고 받은 뒤 항소 |
1919. 6.30 | 성복심법원에서 3년형 선고 |
1920. 3.1 | 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며 독립만세운동전개 |
1920. 9.28 |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 |
어린나이에도 굴하지않고 형무소에 갇혀 독립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열사의 뜻을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이밖의 너무나 많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더 되새기며
경건한 3.1을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극기 게양 방법
오는 3월1일은
제 105주년 3.1절 입니다. 모두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하는 마음으로 태국기를 답시다.
가정에서는 오전 7시~ 오후18시까지 태극기를 답니다.
* '대한민국 국기법' 제8조에따라 매일 24시간 달 수 있습니다.